콜럼버스 구해준 그 개기월식, 521년 만에 다시 온다
14일 북미대륙에서는 521년 전 콜럼버스와 자메이카 원주민이 보았던 것과 똑같은 개기월식이 재현된다. 유럽우주국 제공
500여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를 위기에서 구해준 개기월식이 똑같은 형태로 14일 새벽(한국시각 14일 오후) 북미 대륙에서 진행된다. 개기월식은 지구 그림자에 달이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태양-지구-달 순서로 세 천체가 일직선으로 놓여 있을 때 나타난다.
이번 개기월식은 아메리카 대륙 전부와 남극 대륙, 아프리카 서부 일부, 서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일본 북부, 러시아 동부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다. 개기월식이 지속되는 시간은 66분으로, 한국 시각 기준으로 14일 오후 3시26분에 시작해 4시32분에 끝난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은 식민지 시대의 물꼬를 트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콜럼버스는 이후 10여년에 걸쳐 세차례 더 대서양을 건넜다.
1502년 4척의 배를 이끌고 마지막 네번째 대서양 횡단 항해를 하던 그는 1503년 6월 중앙아메리카의 자메이카 북쪽 해안에서 좌초돼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엔 기꺼이 식량을 주던 자메이카 원주민들은 몇달이 지나자 식량 제공을 중단했다.
1504년 콜럼버스의 개기월식 예언이 들어맞자 자메이카 원주민들이 그에게 신의 분노를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묘사한 목판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개기월식을 신의 분노로 속인 콜럼버스
식량이 바닥난 그때 콜럼버스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개기월식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천문력을 통해 곧 개기월식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원주민들에게 자신의 일행에게 식량을 주지 않으면 전능한 기독교의 신이 분노해 달빛이 희미해지고 붉은 피 색깔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 월식이 진행되면서 달빛이 희미해지며 서서히 붉은 색으로 변하자, 놀란 원주민들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달이 붉게 보이는 ‘블러드문’은 일반적으로 개기월식 때 동반되는 현상이다. 월식이 진행되는 동안 달은 지구 그림자에 가려져 직접 햇빛을 받지 못하는 대신, 지구 대기를 통과한 햇빛이 굴절돼 달에 도달한다. 이때 파장이 짧은 푸른빛은 도중에 산란되고, 파장이 긴 붉은빛만 남아 달을 붉게 물들인다.
일반적으로 개기월식 중에는 달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블러드문 현상이 나타난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당시 상황을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디난드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은 크게 울부짖고 통곡하면서 사방에서 식량을 싣고 배로 달려와 모든 수단을 다해 신이 진노하지 않도록 중재를 해 달라고 간구했다.”
콜럼버스는 모래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신에게 기도하는 연기를 했다. 그러고 난 뒤 원주민들에게 신으로부터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으니 달이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며 원주민들도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럼버스의 ‘개기월식 작전’ 덕분에 그의 일행은 6개월 후 이곳을 떠날 때까지 더는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당시 개기월식이 일어난 날은 1504년 2월29일(현지시각 기준)이었다.
그로부터 521년이 지난 2025년 3월14일 그때와 거의 똑같은 형태의 개기월식이 북미 하늘에서 재현된다. 미국 휴스턴의 라이스대 패트릭 하티건 교수(천문학)는 14일의 북미 개기월식을 분석한 결과, 달이 지구 그림자를 통과하는 경로와 날짜가 당시와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천문학회(AAS)가 발행하는 ‘리서치노트’에 발표했다.
3우러14일 개기월식을 볼 수 있는 지역. 한국에선 볼 수 없다. in the sky 제공
다음번 콜럼버스 개기월식은 2546년 3월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지구와 달의 공전궤도가 만들어내는 주기에 따른 것이다. 이를 사로스 주기라고 부른다. 사로스 주기는 월식과 일식에 모두 적용된다. 일식과 월식은 태양과 지구, 달이 일직선상에 있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매번 완벽하게 일직선을 이루지는 못한다. 세 천체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223 삭망월(보름달에서 다음 보름달까지의 기간, 29.5일), 즉 18년 11일 8시간(6585.3일)마다 거의 똑같은 위치로 돌아온다.
그 중에서도 이번 월식은 521년마다 오는 하이퍼사로스 주기에 해당한다. 하이퍼사로스 주기에 일어나는 월식은 발생 시일과 위치, 지속 시간이 거의 똑같다.
하티건 교수는 “3월14일 북미 개기월식을 관측하는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그 역사적 사건을 다시 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라며 “다음번 콜럼버스 개기월식은 2546년 3월18일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월식은 한국에서 볼 수 없지만, 9월8일 새벽에 일어나는 개기월식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이날 새벽 2시30분24초에 시작해 3시53분12초까지 진행된다. 아시아, 러시아, 호주, 인도양에서 볼 수 있다.